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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29일, 그날 저는 뉴스 속보를 보며 손이 떨렸습니다. 황당하게도 월드컵 4강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던 바로 그 시각, 서해 바다 위에서는 우리 해군이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 가 2015년에 개봉했을 때, 저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무게를 안고 극장에 들어서야 했습니다.2002년 그날, 가족과 함께 겪은 공포 혹시 가까운 가족이 군에 있던 상태에서 전쟁 같은 뉴스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그 공포가 어떤 것인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쉽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2002년 연평해전이 터졌을 당시, 저의 친척 한 분이 마침 군에 복무 중이었습니다. 속보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가족 전체가 얼어붙었고, 어떻게든 안전 여부를 확인하려고 소속 군단과 지휘관에게까지 ..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에서 순직한 소방관 6명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올라왔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향하면서 이미 마음이 무거웠던 건, 단순한 영화 기대감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던 소방관들의 뒷모습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실화가 가진 무게 — 홍제동 화재와 소방관의 헌신 저는 과거 국가보안시설에서 방호직으로 근무하던 시절, 시설 인근 비보호 삼거리에서 셔틀버스와 택시가 정면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20여 명의 승객이 탄 버스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저는 즉시 119에 긴급 출동을 요청하며 2차 화재 예방을 위한 초동 조치에 나섰습니다.그때 사이렌 소리와 함께 도착한 소방관과 구급대원들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트리아지(tria..
기침 소리 하나에 흠칫 몸을 움츠렸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코로나19를 겪고 난 뒤로 저는 지하철 안에서 옆자리 사람의 기침 소리만 들어도 괜히 거리를 벌리게 됩니다. 그 감각이 얼마나 강렬하게 남아 있는지, 2013년 극장에서 가볍게 봤던 영화 한 편을 떠올릴 때마다 새삼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그 영화가 바로 김성수 감독의 재난 영화 입니다.단순한 기침이 도시를 삼키는 과정 — 바이러스 전파의 사실성 2013년 처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아무리 바이러스가 강해도 단순한 호흡기 감염이 저 정도로 번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영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때는 재난 영화 특유의 과장이려니 하고 넘겼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면 그 안일함이 너무도 부끄럽습니다.영..
솔직히 저는 2004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코웃음을 쳤습니다. 스크린 속 로봇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 그저 할리우드의 과장된 상상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22년이 지난 지금, 육아휴직 중에 우연히 다시 꺼내 본 영화 한 편이 그 비웃음을 완전히 거둬들이게 만들었습니다.로봇 3원칙, 영화의 철학적 뼈대영화 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먼저 '로봇 3원칙(Three Laws of Robotics)'을 알아야 합니다. 로봇 3원칙이란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가 1942년 단편소설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로봇이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할 행동 원칙을 세 가지로 정의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로봇은 인간을 해쳐선 안 되고,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자신을 보호해야 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재난 영화라면 으레 거대한 스케일과 생존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기대하게 마련인데,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이 "이 영화는 도대체 뭘 하려던 걸까?"였으니까요. 김다미 배우를 믿고 선택한 작품이었는데, 관람 전후의 괴리감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재난 영화라는 장르가 관객에게 거는 약속 일반적으로 재난 영화는 장르 문법이 비교적 명확한 편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 문법을 그대로 기대하며 앉았습니다. 제목이 대홍수인 데다 초반 세팅부터 물난리와 해일을 예고하고 있으니, 당연히 극한 상황 속 생존 서사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죠.장르 영화에서 말하는 장르 문법(Genre Convention)이란, 관객이 특정 장르를 선택할 때 암묵적으로 기대하는 서사 구조와 감정적..
아무 계획 없이 극장에 들어가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며칠 전 아내와 즉흥 데이트를 하다가 시간이 맞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화 보스를 봤습니다. '보스'라는 제목에 무거운 조폭 누아르를 예상했지만, 극장 문을 나설 때는 팝콘을 반도 못 먹을 만큼 웃고 나왔습니다. 기대가 없었던 만큼 만족감은 배가 되었던 영화였습니다.클리셰를 뒤집은 설정, 그게 이 영화의 전부다혹시 조폭 영화라면 자동으로 피가 튀기는 장면부터 떠오르시는 분 계신가요? 저도 솔직히 그랬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누아르(noir) 장르 특유의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여기서 누아르란 범죄, 폭력, 배신 등을 어두운 톤으로 그려내는 영화 장르를 뜻합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영화 보스의 핵심 설정..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틀면서 한 번도 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재우고 나서 아내와 나란히 앉아, 오랜만에 팝콘이나 먹으며 배 잡고 웃어보자는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어느새 꾸벅꾸벅 조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광수 배우의 복귀작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저처럼 엇갈린 감정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이광수라는 배우, 스크린에서도 통할까 — 예능 이미지 소비의 함정 혹시 '페르소나(persona)'라는 개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페르소나란 배우 혹은 공인이 대중 앞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특정 이미지나 성격적 패턴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시청자가 "이 사람은 이런 캐릭터야"라고 굳혀버린 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광수 배우의 경우, 십 년 넘는 런닝맨 출연..
첩보 영화를 극장이 아닌 야외 카페 옥상에서 봐도 몰입이 될까요?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오히려 그 낯선 조합이 영화를 더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육아휴직 중 모처럼 아내와 단둘이 떠난 수원 근교 나들이에서, 태블릿으로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휴민트를 봤습니다. 스크린 속 블라디보스토크의 팽팽한 긴장감과 봄바람 부는 카페 옥상의 한적함이 묘하게 겹쳐지던 그 오후를 아직도 잊기 어렵습니다.봄 햇살 아래서 첩보전을 — 야외 관람이라는 특별한 맥락 어두운 극장 안에서 스크린에 압도당하는 것만이 영화 감상의 정답은 아니지 않을까요?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탁 트인 야외에서 보는 첩보물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했습니다. 오히려 평화로운 풍경과의 대비가 스크린 속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효과가 ..
평소 집에서 무서운 영상을 거뜬히 보던 아이가 극장에서는 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릴까요? 저도 이날 전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육아휴직 중이라 모처럼 네 식구가 함께 극장을 찾았다가,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짐을 싸서 나와야 했던 그날 이야기를 꺼내봅니다.극장이라는 공간이 만드는 공포 — 사운드 디자인과 몰입 환경 올해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있어서, 아내와 상의 끝에 코믹한 설정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고 좀비딸을 골랐습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부성애를 B급 코미디로 풀어낸다는 기획 자체는 솔직히 꽤 매력적이었습니다.그런데 막상 상영관에 들어가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좀비들의 리얼한 분장과 함께 터져 나오는 기괴한 소리가 스크..
10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초등학교 갓 입학한 아이와 함께 극장에서 본다는 게 과연 현실적인 선택일까요? 저도 솔직히 반신반의하며 예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상영관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왜 이걸 더 빨리 안 봤지?" 오늘은 그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감정 캐릭터로 사춘기 심리를 시각화한 방식 픽사(Pixar)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단연 새로운 감정 캐릭터들의 설계입니다. 1편에서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다섯 가지 원초적 감정이 주축을 이뤘다면, 이번 편은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내면에 새로운 감정들이 밀려드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여기서 핵심은 감정의 복잡성을 어떻게 시각적 내러티브(Visual Narrative)로 전환했느냐입니다. 시각적 ..
